두려움을 마주하고 응전하라

엘리스2021-05-27

세계대전은 20세기 최대 비극으로 꼽힌다. 대규모 전쟁은 도시를 파괴했고, 경제는 망가졌으며, 눈먼 폭력 앞에서 인간성은 무너졌다. 전쟁은 다자간의 이해관계가 맞물려 발생하는데, 한 국가나 집단이 이를 막기는 어렵다. 마찬가지로, 일어난 전쟁을 끝내는 것은—이해관계의 실타래가 이미 한 번 꼬여버린 상황에서는—더 어렵다.

그런데 그 어렵다는 종전, 그 중에서도 1차세계대전의 끝을 앞당겼다고 하는 숨은 이유가 있다. 바로 스페인 독감이다. 스페인 독감이 어떻게 종전을 앞당겼을까? 군인들이 전투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병을 확산시켰기 때문에*, 참전국의 지도자들이 서둘러 평화조약을 체결했을 가능성이 있다. 그렇다면 이런 질문이 떠오른다. 전쟁이 더 파괴적일까, 아니면 대규모 전염병이 더 파괴적일까?


스페인 독감이 유행했던 1918년 경 미국 시애틀 경찰이 단체로 마스크를 착용한 모습. 개인자유를 핑계로 마스크 착용을 불편해하는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 Wikimedia

‘생물학적으로’ 촉진된 비즈니스의 변화

이 질문에 답할 필요도 없이, 코로나는 우리가 익숙하게 여기던 기존의 질서를 상당부분 바꿔놓았다. 경제적 충격은 말할 것도 없고, 사회적 관계양식에서 비대면(untact)은 반드시 지켜야 할 기준이 되었다. 그 결과 고객 접근과 서비스 유통 방식을 디지털로 전환해야 하는 과제는 모든 비즈니스의 최우선 과제가 되었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사실상, 온오프라인이 결합된 비즈니스 중심으로 경제 구조의 변화를 촉진시키는 ‘생물학적’ 촉매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컨설팅 기업 맥킨지의 혁신 부문 담당자는 인터뷰*에서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의 성공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으로 세 가지를 제시했다. 전환을 통한 재무적 성과, 임직원 역량 강화, 그리고 이러한 결과의 지속가능성이다. 디지털 전환을 시도한 기업들 가운데 이 기준을 통과하는 기업은 30%가 채 되지 않는다.

그는 가장 큰 실패 원인을 ‘파일럿 (프로젝트)의 함정’으로 꼽았다. ‘파일럿 프로젝트’는 장기적인 가능성을 검증하기 위한 실험적 시도를 가리킬 때 쓰인다. 파일럿 프로젝트는 앞으로 지속해 나갈 과업의 방향을 설정하고 개선점을 조기에 발견하기 위한 것이다. 따라서 파일럿 자체의 결과를 가지고 그 이후의 과업이 저절로 잘 될거라거나, 당연히 실패할 거라고 판단할 수는 없다.


JTBC 예능 프로그램인 슈가맨에 대해 제작자는 “파일럿 방송은 실패했다”고 평했다. 그러나 정규편성 이후 시청률이 상승했고, 여러 화제를 일으키며 성공적으로 안착했다.

예를 들어 엘리스의 교육을 받고 렌터카 사고지점 지도를 개발한 A그룹 계열사 직원의 사례를 다시 살펴보자. 이때 A그룹이 이 직원을 포상하고 사내에 널리 알리는 정도로 끝냈다면 손쉽게 ‘파일럿의 함정’에 빠졌을 것이다. 그러나 A그룹은 이 사례를 발판 삼아서, 기초 코딩과 데이터 활용 교육을 전사로 확대했다. 잘 된 것 같다는 평가에서 멈추지 않고, 그러한 흐름을 지속하기 위한 선택과 행동을 취했다.

이러한 전사 형태의 디지털 전환 접근은 작년부터 꽤 자주 발표되고 있다. SK그룹은 사내 교육을 통합적으로 제공하는 플랫폼 ‘마이써니’를 지난 1월 출범시켰다*. 임직원들은 이곳에서 AI 활용을 위한 기초 교육과 디지털 전환에 필요한 역량을 계발할 수 있고, 교육 시간을 인사고과에 반영하는 제도의 시행을 검토 중이라고 한다. 비슷한 예로 하나금융그룹은 ‘하나금융TI’라는 별도 법인을 설립해서, 금융 클라우드 플랫폼 구축 등 그룹내 디지털 및 데이터 기반 전략실행을 주도하고 있다.

전사적 디지털 전환은 비용과 문화 양 측면에서 조직 전체가 흔들리는 리스크를 감수해야 한다. 그런데도 덩치가 큰 그룹들이 상대적으로 안전하고 예측가능한 선별적 인재 영입이 아닌, 전사 차원의 디지털 전환에 나서는 이유는 무엇일까? ‘파일럿의 함정’을 피하려는 이유도 있겠지만, 바로 조직 내 구성원들이 축적해온 경험과 역량, 즉 기존의 도메인 지식이 더 중요하다는 점 때문이다.

도메인 지식이 가장 중요!

당신이 국내 2위 D마트의 전략기획 담당자라고 하자. 당신은 다가오는 황금연휴를 앞두고, 경쟁사인 F마트의 점포 중 매출이 상대적으로 부진한 곳을 파악해서 인근 자사 점포의 품목 다양화와 할인으로 점유 우위를 확보하려고 한다. 그런데 어떻게 하면 매출이 부진한 상대 점포를 찾아낼 수 있을까?

그 동안은 공개된 데이터를 종합해서 추정하거나 각 점포 담당자들의 인터뷰 정보에 의존했지만, 인근 경쟁사 점포의 방문객을 직접 셀 수는 없을까? 그때 당신의 머릿 속에 퍼뜩 아이디어가 하나 떠오른다. 주차장을 촬영한 인공위성 사진과, 이 사진에서 자동차를 헤아리는 사물인식 알고리즘을 활용한다면? 2차 정보를 통한 간접 추정이 아니라, 원하는 데이터를 말 그대로 직접 확보할 수 있다.

위성사진으로 빈 주차구역을 감지해서 알려주는 사진분석 알고리즘의 작동 화면 / 阿里云

한 사람의 머릿 속에서 일어난 것처럼 묘사했지만, 사실 이러한 접근은 팀 차원에서 여러가지 역량이 중첩되어 이루어진다. 정보와 인력과 기술의 화학적 결합이 필요한 것이다.

기존 조직에 새로운 전문 인력의 충원하는 접근으로는 이런 결합이 쉽지 않다. 기술 활용 면에서는 충원된 전문 인력의 역량이 뛰어날 수 있다. 그러나 조직 내 의사결정은 ‘좋은 아이디어와 효율성’뿐 아니라 구성원간의 문화적 상호작용을 통해서 비롯된다. 그렇다면 디지털 전환의 출발점을 어디로 잡아야 하는지 분명해진다. 바로 외부가 아닌 기존 구성원들로부터인 것이다.

기존 구성원들은 이미 문제해결에 필요한 상당한 경험과 정보를 가지고 있다. 이 경험과 정보에 기반해 통찰을 얻으면, 도구는 필요에 따라 외부에서 가져올 수 있다. 실제로 데이터 활용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활용 방안을 설계하고 이에 필요하게끔 데이터를 전처리하는 과정이다. 해당 데이터와 관련된 도메인 지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이 작업이 잘못되면 이후 아무리 좋은 도구를 사용해도 그 결과물(조직의 판단과 실행에 대한 근거가 되는 분석자료)의 가치를 보장할 수 없다.

“자, 그럼 어디서부터 시작하면 좋을까?”

지난 주 발행된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의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특집 기사*는 “중요한 것은 기술이 아닌 인재(talent)다”라는 한 문장으로 디지털 전환을 정리했다. 그러므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데이터를 활용하는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은, 기존 구성원들의 관점과 역량을 지원하는 기초 교육으로부터 출발한다. 당연히 실질적인 효과를 내려면 의사결정권자나 디지털 전담팀만이 아닌 모든 구성원들을 대상으로 진행할 것을 권한다. 이 때 교육의 내용과 방향은 다음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데이터 활용 사례 학습

사례분석의 목적은 디지털 전환 관점과 인식을 탐구하는 것이다. / Needpix

먼저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을 시도했거나 시도하고 있는 업무 및 조직의 사례를 살펴본다. 그 사례 자체를 분석하거나 그것을 자신의 상황에 적용하는 것이 목적은 아니다. 이러한 사례 학습의 목적은 자신이 속한 조직이나 업무의 성격을 디지털 전환의 관점에서 볼 수 있는 다른 인식을 탐구하는 것이다. 사례 학습은 이 시리즈의 지난 글 네 편을 읽는 것 정도로 충분할 수 있다.

디지털 도구 사용 기초 학습

도구를 개념적으로 이해하는 것은 가능하나, 업무 활용을 위해서는 실제로 기초적인 실습을 수행해보는 과정이 필수적이다.

다음은 데이터 활용에 사용되고 있는 최신 도구를 파악하고 사용법을 익히는 것이다. 이때, ‘최신 도구’와 ‘사용법’ 사이에는 꽤 큰 격차가 있다. 최신 도구는 종류와 개념을 살펴보는 것으로 어느 정도 파악이 가능하다. 그러나 그것을 사용하는 것은 전문가의 역량을 요구할 가능성이 있다. 사용법을 익히려면 결국 기초 코딩 학습을 시작해야 한다.  이때 기초 코딩 학습의 목적은 도구를 완벽하게 사용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도구 활용을 아웃소싱하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이해를 확보하는 것이다. 조직의 모든 사람이 머신러닝 모델을 다룰 수 있다면 멋진 일이겠지만, 그럴 수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

다만 머신러닝을 개념적으로만 학습하고, 실무 활용에 필요한 통찰을 얻는 것은 불가능하다. 코드가 무엇이고, 어떤 인터페이스에서 작동하는지, 그리고 누가 그러한 전문성을 갖추고 있는지 안목을 갖추려면 기초적인 학습이 필요하다.

자사 데이터 활용 연습

엘리스의 인공지능 교육 연수에 참가한 수강생들이 이미지 처리 알고리즘의 사용성을 평가하고 있다. 데이터 활용과 분석과정에서는 협업이 필수적이다.

다음 단계는 배운 것을 적용해보는 작업이다. 앞서 도메인 지식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기존 지식과 역량을 잘 발휘하려면 학습 과정에서 제공되는 예제가 아니라, 도메인 지식 기반의 데이터를 사용해보자. 이 때에는 팀차원의 접근이 유용할 수 있다. 협업이 중요하다는 뻔한 말을 하려는 것이 아니다. 문제의식이 공유되지 않으면 협업은 피곤한 과정이 된다. 같은 팀에 속한 이들은 공동의 문제를 공유하고 있고, 이것을 함께 해결하려는 동기가 시너지를 일으킨다.

요컨대 기존 지식과 경험의 토대 위에서, 업무 구조를 통해 문제의식이 공유되고, 새롭게 학습한 기술이 뒷받침된다면 당신의 조직은 디지털 전환의 관문에 들어선 것이다.

두려움을 마주하고 응전하라

1887년 경복궁 경내에 처음으로 전깃불이 설치되었을 때, 수많은 사람들이 놀라움과 호기심으로 궁 근처에 모여들었다. 그러다 전력을 공급하던 증기기관의 냉각수가 궁내 연못으로 역류해 물고기가 떼죽음을 당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당시 사람들 사이에는 증어망국(蒸魚亡國)*, 물고기가 끓고 나라가 망한다는 말이 돌았다. 신식 기술의 관심에 대한 효용보다 그것 때문에 기존 삶이 위협받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컸던 탓이다.

경쟁 체제는 경쟁에 나선 당사자를 퇴출시키기도 하지만, 그 과정 속에서 서로가 성장해나가는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변화의 큰 줄기와 역동을 분명히 인식하고 두려움에 압도되지 않는다면, 전깃불과 증기기관을 활용함으로써 변화에 응전할 기회는 얼마든지 있다.

위기는 상황을 다르게 바라보게 만드는, 변화의 기회가 되기도 한다. / Wallpaper Flare

포스트 코로나시대는 그 대처방법에 따라 위기일 수도 있고,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코드 한 줄을 작성하고, 데이터 한 행을 처리하는 능력을 계발하는 것의 의미는, 시장과 우리 사회에 스스로 기회를 제공하는 일이다. 조직문화와 기업 수행전략의 전면적인 디지털 전환은 자신이 속한 조직의 생존을 위한 선택이지만, 장기적으로는 기업이 속한 사회와 공동체의 생태계를 바꾸는 일이기도 하다.

거창한 사명감을 가질 이유는 없다. 다만 나와 디지털 전환의 실행은 이 사회의 다른 이들에게 분명한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디지털 전환은 이제부터 시작이며, 성과를 만드는 것은 변화에 동참하는 모든 이들의 몫이라는 사실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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